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패션 브랜드, 저는 이 순서로 만들었습니다

배우고 시작한 게 아니라 순서를 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. 대신 제가 지나온 열 걸음을 적어 뒀습니다. 기획서는 아홉 번째에 썼습니다.

손으로 적은 BENURD 브랜드 기획서 지면 — 순서대로 만들어온 기록의 표지

패션 브랜드를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답을 잘 못 합니다. 배우고 시작한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. 대신 제가 지나온 순서는 적어 둘 수 있습니다. 정답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지나온 길입니다.

파는 물건은 아직 없습니다. 여기 있는 것은 한국에서 스물두 살이 혼자 만들어 본 기록이고, 받아 가실 수 있는 것(드로잉 연습장 열 장 · 옷 스케치 템플릿 · 스티커 도안 여섯 장 · 배경화면)은 전부 값 없이 드립니다.

아래 열두 걸음은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, 각각 그 이야기를 적어 둔 기록으로 이어집니다.

  1. 이름부터 지었습니다배우고 시작한 게 아닙니다. 후보를 종이에 적고 소리 내어 읽어 입에 안 붙는 것부터 지웠습니다. NURDPOP, NURD BEN, NU NURD 같은 것들이 그렇게 빠졌습니다. 남은 것이 BENURD였고, 그 종이의 메모는 아직 물음표로 끝나 있습니다. → BENURD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나
  2. 로고는 만들려고 앉은 적이 없습니다낙서 여백에 계속 그리던 얼굴이 하나 있었습니다. 그게 캐릭터가 됐습니다. 지금도 캐릭터 이름은 없습니다. 로고를 먼저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. → 이름도 없이 그린 얼굴 — 캐릭터는 어떻게 태어났나
  3. 가이드를 먼저 만들지 않았습니다디자인 가이드를 먼저 만들라는 조언을 들었지만, 앉아 보니 정할 것이 없었습니다. 첫 티셔츠를 만들어 보고 나서야 기준이 하나씩 생겼습니다. → 규칙을 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
  4. 그리는 것부터 다시 배웠습니다선 긋기부터 형태·명암·투시까지 순서를 직접 짰습니다. 연습 지면 열 장을 만들어 뒀고 무료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. → 그림을 다시 배우기로 했습니다
  5. 그러다 규칙이 생겼습니다종이 한 장에서 슬로건과 컬러 여섯 개가 정리됐습니다. 서체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— 손으로 쓴 글자를 한 벌로 모아 뒀을 뿐이고, 로고는 그날 손에 잡히는 펜으로 씁니다. → 규칙이 생겼습니다 — 브랜드 스토리
  6. 작은 물건부터 만들어 봤습니다다이소에서 산 A4 스티커 용지로 화면 속 낙서를 손에 잡히는 것으로 옮겼습니다. 옷보다 먼저 손에 쥐어 보는 편이 빨랐습니다.프린트용 스티커 종이를 샀습니다
  7. 옷은 도식으로 옮겨 봤습니다치수도 원단도 안 정한 채 넘어갔던 그림을 옷 도식으로 옮기고 기획서를 한 장 뽑았습니다. 고칠 곳 네 가지가 그때 보였습니다. → 민소매 티를 시안까지 고쳤습니다
  8. 뽑아 쓰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도안 여섯 장(검정 2·흰색 4)을 A4 한 장짜리 PDF로 뒀습니다. 노트북 손목 닿는 자리에 붙이니 손때를 막아 주는 쓸모도 알게 됐습니다. → 스티커 도안 여섯 장을 만들었습니다
  9. 한참 뒤에 기획서를 썼습니다브랜드를 만들기 전에 답해야 한다는 열 가지 질문을, 저는 한참 만들어 본 뒤에 적었습니다. 순서가 거꾸로인 셈인데, 그래서 답이 나왔습니다. → 브랜드 기획서 10가지 질문
  10. 다시 만들었습니다피부가 어두운 편이면 흰 티가 얼굴을 눌러 버린다는 걸 알고 색을 다시 골랐습니다. 만들어 보기 전에는 몰랐던 것입니다. → 흰 티가 부담이라 색을 바꿨습니다
  11. 손이 먼저 달라져야 했습니다로고 글씨를 손으로 쓰는 브랜드라 글씨부터 다시 배웠습니다. 교정 책 세 권을 사서 열흘 매일 썼고, 가로 편지지를 세로로 놓고 적어 봤습니다. → 할아버지처럼 써 보고 싶어서
  12. 다음 장을 그리기 쉽게 만들었습니다흰 종이에서는 옷 모양부터 그리다 시간이 갔습니다. 형태만 그려 둔 A4 양식을 만들어 두고, 필요하신 분도 받아 가실 수 있게 올렸습니다. → 옷·운동화 디자인 스케치 템플릿을 만들었습니다

순서가 거꾸로였던 것

브랜드 기획서는 보통 맨 처음에 씁니다. 저는 아홉 번째에 썼습니다. 이름을 짓고, 캐릭터가 생기고, 티셔츠를 만들고, 스티커를 붙여 본 다음에야 「이 브랜드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」에 답할 수 있었습니다.

먼저 앉아서 썼다면 그럴듯한 말만 적었을 것 같습니다. 만들어 본 뒤라 「흰색은 만드는 쪽에서 제일 쉬운 선택이지 입는 사람 기준이 아니다」 같은 문장이 나왔습니다.

지금 있는 것과 없는 것

  • 실물로 만들어 본 것 — 티셔츠 두 장(흰색·스카이 블루)
  • 시안으로만 있는 것 — 민소매 티, 폰케이스, 나머지 색
  • 받아 가실 수 있는 것 — 드로잉 연습장 열 장, 옷 스케치 템플릿, 스티커 도안 여섯 장, 배경화면
  • 아직 없는 것 — 매장, 컬렉션, 파는 물건

그림을 쓰셔도 되는 범위는 그림 써도 되나요에 적어 뒀습니다.

궁금해하실 것 같아서

패션 브랜드는 뭐부터 시작하나요?

저는 이름부터 지었습니다. 후보를 종이에 적고 소리 내어 읽어 입에 안 붙는 것부터 지웠습니다. 그다음은 로고나 가이드가 아니라 작은 물건 하나를 실제로 만들어 보는 것이었습니다. 만들어 보기 전에는 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.

이름 후보는 어떻게 줄였나요?

제가 한 방법은 하나입니다 — 후보를 늘어놓고 소리 내어 읽는 것. 눈으로 볼 때 괜찮던 것도 입에 안 붙으면 지웠습니다. 배우고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지워 나간 것이 전부입니다.

브랜드 이야기는 어떻게 적나요?

저는 종이 한 장에 먼저 손으로 썼습니다. 거기서 슬로건과 컬러가 나왔습니다. 핵심은 셋으로 줄였습니다 — 나다움을 존중한다, 몰입을 즐긴다, 다름을 디자인한다.

브랜드 색과 서체는 어떻게 정하나요?

저는 먼저 정하지 않았습니다. 그려 놓고 보니 쓰던 색이 여섯 개로 정해져 있었습니다. 서체는 아예 정하지 않았고, 손으로 쓴 글자를 한 벌로 모아 뒀을 뿐입니다. 작은 물건에는 여섯 색 중 셋만 씁니다.

로고와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나요?

만들려고 앉은 적이 없습니다. 낙서 여백에 반복해서 그리던 얼굴이 남아 캐릭터가 됐습니다. 반복해서 나오는 것만 남기는 것이 제 방법이었습니다.

첫 티셔츠 시안은 어떻게 만들었나요?

저는 종이 그림 → 옷 도식 → 기획서 한 장 순서로 옮겼습니다. 도식으로 옮기면 치수와 위치를 정해야 해서 종이에서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. 프린트 위치는 쇄골 아래 5~6cm에서 시작해 배꼽 위 4~5cm에 로고 하단이 오게 잡았습니다.

디자인 가이드를 안 만들어도 되나요?

만들어 보고 남은 것을 적어 두는 방식입니다. 저는 첫 티셔츠를 만든 뒤에야 기준이 생겼고, 그것을 종이 한 장에 정리했습니다. 먼저 정한 규칙이 아니라 그리고 나서 남은 것이라 지킬 만합니다.

그림 저작권은 어떻게 하나요?

제 그림의 저작권은 BENURD에 있고, 개인적으로 쓰시는 건 자유입니다. 다시 올리거나 파는 것만 하지 말아 달라고 적어 뒀습니다. 반대로 남의 것을 닮게 그리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— 기존 캐릭터를 닮은 그림 하나는 실제로 글에서 뺐습니다.

무료로 받은 도안은 어떻게 쓰나요?

드로잉 연습장 열 장은 프린트해서 그 위에 바로 그리시면 됩니다. 스티커 도안은 프린터용 스티커 종이에 100%(실제 크기)로 인쇄해 오리면 한 칸이 54×54mm로 나옵니다. 회원가입도 값도 없습니다.

기록은 어떻게 이어 가나요?

완성된 것만 골라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. 잘 안 된 것도 그대로 적어 둡니다. 그리고 사실이 바뀌면 예전 글까지 찾아가 고칩니다 — 티셔츠가 두 장이 되던 날 사이트 여덟 군데를 함께 고쳤습니다.